1984를 읽고 전체주의가 멀리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소 디스토피아와 전체주의를 다룬 영화, 드라마를 재밌어 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를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 오마주의 원본?이 되는 조지 오웰의 “1984” 를 골랐습니다.
배경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입니다. 텔레스크린이 모든 곳에서 시민을 감시하고, 진리부는 과거의 기록을 끊임없이 조작합니다. 넓은 사고를 못하게 “신어”라는 축소된 언어가 강요되고, 모순된 두 명제를 동시에 믿어야 하는 “이중사고”가 일상이 됩니다.
윈스턴이라는 인물이 이 체제에 의심을 품고, 줄리아와의 사랑을 통해 저항을 시도하다, 결국 굴복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인상 깊었던 세 장면
첫째, 윈스턴이 줄리아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잘린 팔을 무심히 차서 치우는 장면.
빅브라더에 적개심을 품고 체제에 저항하려는 인물조차도, 폭격으로 떨어진 사람의 팔을 쓰레기 다루듯 발로 차서 옆으로 밀어버립니다. 저항자라는 사실이 그를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게 무서웠습니다. 체제는 저항하는 사람의 감각까지 마비시킨거 같았습니다.
둘째, 오브라이언이 건넨 책.
이 책은 과거의 위계 사회와 사회주의 운동의 성질을 분석하면서, “진정한 전체주의”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진짜 전체주의의 목적이 어떤 이상도, 더 나은 미래도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이라는 설명이 머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셋째, 수용소에서 마주치는 두 부류의 죄수 — 당원 출신과 일반 범죄자 — 가 보이는 태도의 차이.
구체적인 묘사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아껴두지만, 이 장면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으로 보입니다. 체제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과 체제 바깥에 있던 사람 중, 누가 더 자유로운가. 일반적인? 모습과 달리 발전된? 전체주의에 대해 생각을 오래하게 되더라고요.
2026년에 읽는 1984
이 책이 1940년대 후반에 쓰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면, 80년이 지난 지금 더 경계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거창한 정치 체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까운 회사 안에서도, 누군가의 말을 모두가 따라 말하기 시작하면 반대 의견을 입에 올리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정치에서도 지지자들이 자기 정치인의 모순된 발언을 마치 모순이 아닌 것처럼 양쪽 다 옹호하는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오웰이 말한 “이중사고”가 결국 이런 일상의 작은 굴절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더 자세한 경험담을 적으려 했으나 멈췄어요. 이런게 바로 내부당원의 이중사고…?)
(사실 저는 병렬독서를 하고있어서 다음 독후감은 뭐가 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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